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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트라기우스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원래 알페트라기우스는 라틴어식 이름이고, 정식 이름은 누르 알 딘 아부 이스하크(Nür al-Din Abu Ishaq)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비트루지(AIBitruā)라고 호칭되기도 한다. 그는 원래 이슬람교도인데, 12세기 후반에 활약했다. 알페트라기우스는 지구중심설을 지지했으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이심원설과 반대했다. 그는 플라에는 톤 아카데미아의 에우독수스가 제안한 행성계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 상호 결합하여 다시 부활시키려 했다. 특히 알kit)을 안한 동심구설(페트라기우스는 우주는 모두 아홉 개의 친구로 구성되었고, 일곱 번째 천구까지는 해, 달, 그리고 행성들, 여덟 번째 천구에는 항성들이 고정되어 있으며, 가장 바깥쪽인 아홉 번째 천구로부터 하늘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발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홉 번째 천구로부터 원동력이 나온다는 그의 제안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원동자'로부터 차용한 것이라 보여 진다.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금성의 크기가 태양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금성이 태양을 가린다고 하더라도 태양의 밝은 빛 속에서 작은 반점을 관측하기란 무척 어렵다고 주장한 알 바타니(Al-Battani, AD. 858-929)와 태양과 수성의 내한 시기에 어떤 거무스름한 것을 보았다고 주장한 아베로에스(Averroes, 본명은 Ibn Rushd, AD.1126-1198.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일원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의 주해서와 알마게스트』의 주석서를 편찬했음)를 소개하면서 그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한 수성과 금성의 공전 궤도 위치가 태양의 아래쪽이라고 주장하면서 내놓았던 근거들은 설득력이 너무나 빈약한 것들이라고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마르티아누스 카펠라(Martianus Capella, 5세기경)의 우주론을 소개하며 지구중심설로부터의 이탈을 시도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제1권 제10장에서 백과전서(Encyclopedia)』를 저술한 카펠라가 금성과 수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그 두 행성들은 그들의 공전 궤도가 허용하는 이상의 이각을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를 소개하면서 자신은 이 같은 수성과 금성의 공전 궤도의 중심이 태양이라는 것에 적극 찬동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렇듯 코페르니쿠스는 고전 중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조건만 들어간다면 내용상 일부 잘못된 요소들이 있을지라도, 고대 학설들을 다소 유연하게 이해하며 수용하려는 자세를 취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이 밤에 뜰 경우에, 즉 행성이 태양의 반대편에 있고 지구가 태양과 행성 사이에 위치해 있을 때, 지구와 행성 사이의 거리는 최소가 되고 반대로 행성이 밤에 질 경우에, 즉 태양이 행성을 가릴 때처럼 태양이 행성과 지구 사이에 있을 때, 그 행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최대가 된다는 사실을 통해 행성들의 운동 중심엔 분명이 태양이 위치해야 한다는 것과 태양이 금성과 수성의 회전 중심이라는 것은 여러 현상들의 해석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회전 궤도들은 모두 같은 중심(태양)을 가지며 금성의 회전 궤도와 화성의 회전 궤도 사이의 공간은 두 회전 궤도와 동심원을 이루는 궤도 내지 구(球)로 간주되어야 하는데, 바로 이 공간 안에 지구와 달이 들어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의 위치와 관련된 논증을 좀 더 이어가면서 지구의 중심 및 달과 관련된 것들은 다른 행성들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 주위를 1년에 1회전하며,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고 지구의 중심은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 주위를 커다란 회전 궤도를 그리며 연주운동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자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으며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항성구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 작기 때문에 태양의 운동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지구의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유클리드의 광학』에서 설명하고 있는 "어떤 물체든 한계 거리 이상 멀어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항성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항성의 연주시차는 도저히 감지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논증들의 종합을 통해 마침내 코페르니쿠스는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것은 항성구이며, 그 항성구의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행성들의 수정구가 차례로 놓이게 되는데, 첫 번째는 공전 주기가 30년인 토성, 토성의 궤도 아래에 공전 주기가 12년인 목성, 그 아래에 공전 주기가 2년인 화성, 그리고 지구, 지구 아래에 공전 주기가 7개월 반인 금성, 그리고 금성 아래에 공전 주기가 88일인 수성이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 태양이 정지해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중심설의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게 되면, 그리스 고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헤르메스를 단순히 신화 속 전령으로서의 헤르메스와 확실히 구분 짓기 위해, 예전에 알고 있던 헤르메스보다 '세 배로 더 위대한 헤르메스'라는 뜻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고 달리 지칭하게 된다. 그리스 고전이 복원될 당시 여러 사상과 이론들을 담고 있으면서 '헤르메스'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것들은 딱히 누구라고 말하기 어려운 얼굴 없는 작가들' 내지 유명하지만 자신을 굳이 드러내기가 싫었던 학자들의 작품들이었다)로 작가명이 통칭되는 작품들에 내재된 사상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작품에서 태양을 가리켜 '보이는 신(visible god)'이라 지칭하고 있음과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406)의 작품 「엘렉트라 (Electra)』에서 태양을 가리켜 '모든 것을 응시하는 자(者)라고 묘사하고 있음을 함께 언급하면서 태양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서두에서 줄곧 여러 학자들의 작품 속에 내재된 태양중심적 사상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대학과 교회에서 신봉하고 있던 고전 작품의 내용들 중에서 자신의 이론과 방향을 같이하는 것들을 추출해 논증 과정에 응용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학문적으로 충분하리만큼 타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