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대학 부속 교회당 정문에 '95개조(個條)'를 내걸고 가톨릭교회 당국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면서 교회가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야 함을 주장했다. 처음에는 단지 항의(議) 표명정도가 목적이었으나, 사태가 일파만파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에 루터는 구원을 받기 위해 교황을 반드시 인정할 필요는 없다'는 기치(旗며) 아래 추종 세력을 규합하여 가톨릭교회와 대치하게 된다. 가톨릭교회 당국과 프로테스탄트 세력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교리만이 성서의 올바른 해석임을 주장하며 상대 세력에 대해 일체의 이해나 관용을 베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두 세력은 각기 다른 종파로 분기되었다. 결국 1555년에 이르러 아우크스부르크 조약(Augsburger Religionstriede)cu을 통해 그 지역 종교는 그 지역 통치자가 결정한다(uis regico), eius religio)'는 내용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긴장은 수십 년간 지속되다 결국 1618년에 종교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30년 동안의 길고 길었던 이 전쟁은1648년에 베스트팔렌 조약(westfilischer Frietle)이 체결됨으로써 종결되는데, 이것 역시 아우크스부르크 조약을 다시 한 번 재확인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프로테스탄트는 다양한 계파로 나뉘었는데, 그들 간의 세력 경쟁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16~17세기 교회 당국 및 신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태양중심설이 옳은 것임을 진정 알고 있었으면서 억지로 그 사실을 부정하려 했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분명 코페르니쿠스 이론이 옳지않다고 생각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실체를 알고서도 진실을 감추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교리(敎理)를 '과학'이 아닌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관련해,그들이 비록 무지(無知)했을지언정 불순(不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1장토마스 쿤(T. S. Kuhn)의 '과학혁명' 이론을 통한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라는 신조어(造語)는 버터필드가 1946년에 저술한 『근대 과학의 기원(The Origins of Mottern Science: 1300-1800)』에 처음 소개되었다. 버터필드는 근대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의해 구분하는 것은 서양 중심적 사상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생각에서 비(非)서양권에서도 수용할 수 있는 '근대 과학의 보편성'에 착안하여 근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과학혁명'을 제안했다.
그로부터 16년 후, 고유명사로 취급되던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을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이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패러다임의 교체 과정을 통해 어느 때든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 사건으로서의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s)'이라는 의미로 탈바꿈시키면서 일반명사로 전환되었다.
쿤이 제안하는 '과학혁명의 구조'는 (정상과학(正常科學) → 이상현상(異常現象)위기(危機) 과학혁명(學革命) • 새로운 정상과학(正常學)]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런데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를 저술하기 5년 전인 1957년에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저술하여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이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소개한 바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혁명의 구조』(1962)가 출판되기 전이었기에, 과학혁명의 핵심인 '패러다임'에 입각한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해석은 다소 불충분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에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의 출현 과정을 과학혁명의 구조'에 입각하여 간략하게나마 분석하고자 한다. 그런데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닌 용어인가?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용어는 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현재 패러다임은 '당대 해당 분야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치 체계 또는 가치 기준'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는데, 1962년에 출판된 『과학혁명의 구조에 처음 소개된 패러다임은 22가지의 의미로 표현되고 있다는 비평가의 지적이 나올 정도로 다소 애매하고 변칙적인 의미로 활용되었다. 이에 쿤은 1969년에 『과학혁명의 구조의 개정판에서 그런 지적에 대해 패러다임의 속성을 다시 조명하는 방식을 통해 패러다임의 의미를 보다 뚜렷하게 제시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소개되기 전까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은 『알마게스트를 통해 아라비아와 동로마제국을 중심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은 다소 오차가 있긴 했으나, 학계는 완전히 새로운 행성 체계가 필요하다고 느낄 만큼의 큰 위기 상황을 단 한 번도 경험하질 않았다. 그로 인해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과 융합한 후,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방어막을 통해 특별한 의심이 없이 16세기 중엽까지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갈 수가 있었다. 이 시기가 바로 과학혁명의 첫 단계인 '정상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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