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급팽창은 빅뱅 직후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주팽창이 일어나기 전, 즉 우주 탄생의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 탄생의 시점에서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이다. 하지만 무한대의 밀도와 온도는 우리의 상식과 물리학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밀도와 온도가 무한대라면 이 이론은 한계에 이른 것이고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물리학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의 이론이 어떤 특정 영역에서 현실적인 물리량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 이론은 유효성의 한계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데 더는 타당하지 않다. 이런 한계가 나타난 궁극적인 이유는 일반상대성이론에 양자 이론의 효과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거시 법칙과 미시 법칙 사이의 대립이 극복되어 하나의 조화로운 이론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현대 물리학이 안고 있는 가장 힘든 도전인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리해보자. '양자중력'이라는 새로운 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우주를 지배하는 4개의 기본적인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중에서 중력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양자이론은 나머지 3개의 힘을 다룬다. 간단히 말하면 중력은 아주 작은 덩어리나 양자로 쪼개질 수 없는 반면에 나머지 3개의 힘은쪼개질 수 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두 이론은 통합되기가 힘들다.
만약 이 두 이론의 통합이 성공을 거둔다면 우주의 탄생은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염원해왔지만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원칙적으로 우주 전체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대통합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이론의개념 역시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대부분의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궁극의 이론인 이 대통합이론이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가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다 보면 미시 이론인 입자물리학이나 거시 이론인 우주학 둘 중 어느 하나에 결국 귀착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대통합이론이란 이름은 근거가 있는 것이다.
양자중력의 이론적 정립을 위해서 많은 천재적 물리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연구를 기울여왔지만 아직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이 이론을 푸는 일은 무척 힘들다. 아직 어떤 이론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물리학자들은 우주 탄생 때에 정확하게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설명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를 탄생의 대략적 순간까지만 설명할수 있다. 여기서 대략'이 중요하다. 양자중력이론은 다양한 방법론들과 여러 연구 방향들을 적용하면서 실효성 있고 완성도 있는 이론이되기 위해서 여러 발전단계를 겪어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양자중력이론에서 얻었던 성과에는 무엇이 있을까?
(의양자중력에 관한 최초의 이론적 시도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제임스 하틀(James Hartle, 1939~ )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 )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 '호킹-하를 제안에서는 오늘날의 우주 상태가 우리가 살각할 수 있는 모든 우주의 발전 총합으로 설명된다. 이 '경계 없는 우주' 모델에서는 우주의 시작이 없다. 마치 구의 표면에는 면적이 시작되는 그 어떤 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하틀과 호킹의 우주모델에도 문제가 있다. 두 학자에 의해서 발전된 이 경계 없는 우주' 모델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이 이론의 현대적 버전을 '대통합이론의 한 가능성으로 선호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아직 일반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이론에서 현재 가장 널리 통용되는 모델은 초끈이론이다. 줄여서 끈이론이라고도 한다. 이 이론에서는 종래 입자물리학에서 점의 형태로 가정된 소립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끈의 형태라고 주장한다. 물론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 미루어 보건대 이 끈이론은 오로지 특정 차원, 예를 들어 10차원 혹은 11차원 등에서만 정립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높이, 너비, 길이의 3차원과 시간 차원이 합쳐진 4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차원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끈이론에서는 그런 차원의 영역은 너무 미세해서 우리가 관찰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
내가 끈이론에서 특히 불만인 점은 이 이론에서 사용하는 수학이 원칙적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극도로 범위가 넓고 변화가 많다는 것이다. 끈이론은 수없이 많은, 적어도 수천 개가 되는 해법을 갖는 수학적 모형을 제시한다. 이러다 보니 우주를 설명하는 데 적용되는 끈이론에는 다양한 버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이론들 중에서 과연 어떤 이론이 우주에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이다. 이것은 결국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만 규명될 수 있다. 하지만 끈이론은 관찰과 실험의 토대에서 정립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즉, 끈이론은 다양한 차원의 존재와 같은, 증명될 수 없는 기본 가정들에서 출발하고 있다. 여기에 부합하는 어떤 관찰 근거도 아직은 없는 실정이다. 끈이론의 비판자들은 끈이론에서는 지금까지 학문적으로 확실한 결실과 전혀 관계없는 학문적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 25년 동안 저명한 학자들이 이 분야에 관여했지만 아직 검증 가능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리양자중력'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의 장점은 우선끈이론보다 적은 수의 가설을 이용하면서도 우주의 시작을 설명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고리양자중력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이 이론에서는 공간과 시간에서 고리 모양의 구조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고리양자중력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정립된 시공간의 기하학과 양자이론의 개념들을 통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우주 탄생 때의 극한 조건들 속에서는 시공간의 고전적 개념들로는 현상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리양자중력이론에서는 우주의 성질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띄엄띄엄 시간 간격에 따라 변한다.
고리양자중력의 흥미로운 점은 이 이론에서 빅뱅은 중간단계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우주가 계속해서 거듭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력 작용으로 인해 다시 수축하고 있는 우주를 우선 가정해보자. 이때 우주는 정반대의 빅뱅 방식을 통해 극도로 높은 밀도를 갖게 된다. 이러한 높은 밀도에서는 양자효과로 인한 반발력이 발생하는데, 이 반발력은 결국 중력을 뛰어넘어 우주가 다시 팽창하게끔 만든다.
고리양자중력이론에서는 빅뱅 대신에 '양자 용수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눌러졌다가 다시 튕겨지는 용수철과 유사한 것으로, 우주에서는 양자효과만이 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물리량들은 빅뱅이론의 경우처럼 무한대로 수렴하지는 않게 된다. 어쨌든 고리양자중력이론에서 우주는 시작이 없다. 우주는 언제나 존재했고 빅뱅이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도 설명할 수가 있다. 만약 양자중력의 가설이 옳다고 밝혀진다면 브루노가 가졌던 생각도 바로 이 점에서 옳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의 우주는 영원에서 시작해서 영원으로 향해 가는 것이다.
끈이론이나 고리양자중력이론과 같이 궁극적인 대통합이론도 결국에는 우주의 급팽창, 즉 인플레이션 개념을 포함해야 한다. 바로 이 인플레이션이라는 특성이 대통합이론의 정당성을 가늠하는 결정적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성공할지는 현재로서는 별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미래의 우주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수축하면서 새로운 우주를 만들 것인가? 이 질문들을 계속해서 다루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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