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근대 천문학 등장 전후의 기독교

캠퍼고군2 2022. 5. 13. 13:13

이해를 돕기 위해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일반적으로 댐은 한계 저수량 이상으로 물이 차 범람할 경우 결국 붕괴된다. 그런데 어느 해 기상이변(氣象異變)으로 인해 유례가 없는 폭우가 오랫동안 내리는 바람에 댐에서 하루 종일 방류를 해도 감당이 안 될 만큼, 수량이 급속히 증가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로 인해 엄청난 양의 물들이 순식간에 밀려와 댐이 물을 다 가두지 못하고 범람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댐을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범람이 계속되는 과정에서도 댐은 쉽게 붕괴되지 않고 있다. 분명 댐이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死定事實)로 인지가 되지만, 그래도 붕괴되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시간과의 싸움일 뿐인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여기저기 금이 가면서 댐은 붕괴하고 말 것이다.

여기에서 댐은 기독교의 정통 교리,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삼위일체로 결합된 기존의 패러다임이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찾아온 폭우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가 될 것이고, 점차 모여든 물이 큰 덩어리가 되어 댐으로 돌진 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 추종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댐이 완전히 붕괴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거의 150년이었다. 이것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가 등장한 이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에 의해 근대 천문학의 기본 원리가 체계화되기까지 소요된 검증기간이다. 이 검증기간 동안에 지구중심설은 '위기'를 거쳤으며, 학계는 곧장 '과학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었다. '과학혁명'의 시기에 기존 패러다임의 추종 세력들은 앞서 설명한 바 있는 세 가지 선택적 기로에서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결국 '인간 중심-지구 중심'을 견지했던 기독교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축출되어 무대 뒤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일명 프린키피아로 불리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출판된 이후, 학계에서는 더 이상 태양중심설에 관한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이때가 바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학계를 완전히 지배하는 '새로운 정상과학의 시대다.

여러 학자들마다 과학 발전에 관한 해석은 다를 수가 있다. 대표적으로 과학 지식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 대해 쿤과 (1965년 7월, 영국 베드포드대학에서) 격론을 벌였던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1994)는 쿤이 과학의 발전 과정을 '패러다임의 안정성 여부'에 역점을 두고 설명한 것과는 달리, 포퍼는 패러다임을 여러 극복할 대상들 중 하나로만 간주했다. 이런 주제와 관련해 포퍼는 앞서 1934년에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영문판은 1959년에 출판되었음)를 통해 과학 지식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가치 체계(패러다임) 의 재(再)생산 같은 것들이 아니라, 과학적 범주 안에서 그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반증가능성(反證可能性)'이라고 제안한 바가 있다.

그런데 포퍼와 쿤은 과학에 있어 '나아간다(progress)'는 것이 인간이 처한 상황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 절대적 진리를 이끌어 내며, 기독교적 구원 신화를 대체하는 능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에는 서로 동의를 했다(이것은 과학적 활동에서 오직 진행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해석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퍼와 쿤이 합의한 이런 과학적 속성에 상관없이 16세기의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서문과 제1장에서 자신의 연구는 교회력(敎會曆)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자 그리고 절대적 진리에 다가가고자, 마지막으로 기독교 세력권의 번영에 기여하고자 이루어진 것임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포퍼와 쿤의 견해와 일부 상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실 포퍼와 쿤의 합의는 보편적 해석이며, 코페르니쿠스는 여러 개별 사건들 중 하나이기에 모든 사항에서 꼭 합치될 수는 없다). 이것은 과학적 활동을 수행하는 당사자의 연구 의도와 실제 과학이 발전해 가는 과정은 서로 별개라는 것을 보여 주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 전개되었던 일련의 사건들 대부분은 그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발생한 것들이었다. 설사 그의 의도와 일부 합치되는 것들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12장 우리는 왜 역사와 과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

역사는 인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연구하는 분야다. 당연히 현재 결과에 대한 원인과 그 과정들 모두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매우 중요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는 우리가 도약의 고비나 위기의 기로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를 알려 주는 중요한 나침반이다. 그러니 어떻게 공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학은 현재 인류의 문명이 어디까지 도달했으며, 또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 지를 알려 주는 학문이다. “생명체가 출현한 이래로 지금까지 진화해 오면서 하나씩 쌓아 온 과학기술은 현재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이르렀는가?” 또 “앞으로 인류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디를 지향하면서 과학을 연구하고 있는가?” 이런 유(類)의 물음에 대한 답은 매주, 매달나오는 엄청난 양의 출판물, 보고서, 논문, 그 밖의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항상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과학 발전의 성과는 (그리 오랜 기다림 없이) 우리 실생활에서 직접 경험하게 되는데,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과학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와 과학에 항상 관심을 갖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인류의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