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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정상과학과 이상현상 패러다임

캠퍼고군2 2022. 5. 14. 13:13

정상과학의 다음 단계인 '이상현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학계 내부에서 기존 패러다임과 관련해 여러 모순과 문제들로부터 야기되는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해야만 한다. 그러한 사건들의 누적은 이상현상의 빈번한 출현을 이끈 후에 위기를 불러온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기존 패러다임이 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는다면, 비록 팔, 다리가 몇 개 잘려 나간다 할지라도 기존 패러다임은 변함없이 존속이 가능하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천 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서문과 제1권을 통해 선행철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타쿠스(Aristarchus, BC. 310230)를 누락하고 말았으나, 제3권 제2장에서 황도의 경사각과 관련된 논제를 다루는 도중에 아리스타쿠스의 이론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했다.

기원전 3세기경에 아리스타쿠스가 태양중심설을 주장했으나, 당시 학계에서는 기존의 지구중심설과 비교하여 아리스타쿠스의 제안이 실용적 측면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라거나 또는 학술적 측면에서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할 만큼 특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질 않았다. 오히려 학계에서는 비록 지구중심설이 당장 몇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긴 하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들은 오직 '지구중심설'이라는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학계의 기본원칙으로 자리 잡아 천 년 이상 지속되었다.

이처럼 허용할 수 있는 한계 내의 오류와 모순들이라면 장기간 누적되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학계를 변화시킬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학계는 기존 패러다임의 원칙들이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존폐를 고민할 만큼의 위기를 느낄 때, 비로소 변화를 모색하기 때문이다. 학계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면, 즉 그들이 경험하는 오류와 모순이 이상(異常)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정상과학은 결코 '이상현상' 단계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과학혁명의 두 번째 단계인 이상현상'의 등장은 달력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가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용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에 대해 학계 일부가 인내력을 잃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예로부터 교회의 권위는 교회 제례 의식의 엄격한 수행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었던 교회 당국의 지도층은 달력의 부정확성으로 인해 제례일이 들쑥날쑥하듯 하게 되자, 이런 문제들로 인해 교회의 권위가 조금씩 실추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서의 내용을 일부 부정하고, 전통적 ( 우주론의 틀을 개조하는 희생을 치를 만큼이나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한 문제들은 아니라고 여겼다. 이와 관련해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천문학계 역시 달력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어찌 되었건 간에 '지구중심설'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다루어져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교회 당국과 천문학계의 이런 판단은 당시 '지구중심설'을 견지하고 있던 기독교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철학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삼위일체의 구조를 이루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 중심-지구 중심'이라는 기본 원칙을 철저히 좇아갔으며, 결코 그 원칙을 의심의 대상으로 간주하질 않았다.

한편 코페르니쿠스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서문에서 달력 제작을 비롯한 여러 현실적인 문제점들의 해결, 그리고 일부 선행 자연철학자들의 이론들이 모순되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행성계를 제안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것은 당시 천문학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코페르니쿠스만의 의도였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당시 천문학계를 주도하고 있던 세력들은 천 년 넘게 이어오는 정통적(正統的)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을 폐기할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서문과 제1권에서 밝혔듯, 자신이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로부터 일찍이 태양중심설에 관한 근거를 찾을 수가 있었다는 것과 우리가 앞서 확인한 바가 있듯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신플라톤주의 학풍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해 볼 때, 이런 환경적 요소들은 당시 천문학계의 다른 학자들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었던 조건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고 기존 패러다. 임을 고수했다. 이를 통해 기존 패러다임이 '이상현상'과 '위기'를 거치면서 맞게 되는 '패러다임의 변종(變種)'은 반드시 학계 전반에서 발생하거나 또는 학계 전체의 동의를 어떻게든 이끌어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님이 확인된다. 이에 티코의 독창적인 지구중심설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지향점과는 달랐을지라도 학계 내에서 발견되는 '패러다임 변종'의 또 다른 예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때, '이상현상'은 천문학계 전체가 아닌, 단지 코페르니쿠스만의 관점에 입각한 해석으로 국한된다. 당시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딱히 '위기' 상황을 불러올 만큼의 이상현상'이 지구중심설 내부에 누적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무대 위로 등장한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까운 돌발적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학계에 의한 '검증기간(檢은 상당히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